해외 · 천체·기초물리 · Nature
실험실의 빛으로 블랙홀을 재현하다 — 광섬유 아날로그로 ‘호킹 복사’ 생성·역반응 규명
우주에서 아직 직접 관측되지 않은 블랙홀의 미약한 빛,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의 생성 과정을 실험실의 광섬유(光纖維)로 재현한 연구가 나왔다. 국제 공동연구진(제1저자 로렌초 M. 프로코피오 등)은 광섬유 속에서 빛의 펄스가 만들어 내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유사 환경, 곧 아날로그(모사) 계를 이용해 호킹 복사가 발생하는 과정과 그 복사가 원래의 빛(펌프 광)에 되돌려 미치는 ‘역반응(逆反應·backreaction)’을 실험·이론적으로 규명하고, 그 결과를 6월 30일자(온라인 7월 1일)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하였다. 호킹 복사는 1974년 스티븐 호킹이 블랙홀도 완전히 검지 않고 양자 효과로 인해 미약한 열복사를 방출한다고 예측한 현상이다. 연구진은 종전에 복잡한 다단계(cascaded) 과정으로 여겨지던 이 복사의 발생이, 실제로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과정임을 확인하였다고 밝혔다.
기술적 의미
이번 성과의 핵심은, 중력이 지배하는 극한 천체 현상을 ‘탁상 위 광학 실험’으로 끌어와 정량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길을 넓혔다는 점이다. 실제 블랙홀의 호킹 복사는 너무 미약해 관측이 사실상 불가능한데, 광섬유·유체·초저온 응축체 같은 아날로그 계는 동일한 수학 구조를 실험실에서 재현해 이론을 시험하게 해 준다. 특히 복사가 원래의 빛에 되돌려 미치는 역반응을 포착한 것은, 블랙홀이 복사를 내며 서서히 질량을 잃는 ‘증발(蒸發)’ 과정의 물리를 이해하는 데 실마리를 준다. 다만 아날로그 계에서 얻은 결론을 실제 중력장(重力場)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며, 양자중력 이론과의 연결은 여전히 열린 과제로 남는다.
국내 · 재료·분리공정 · Nature·KAIST
원유를 끓이지 않고 걸러 낸다 — KAIST, 상온 작동 차세대 분리막 네이처 보고
원유를 뜨겁게 끓여 성분별로 나누는 100년 된 정유(精油) 공정을, 상온에서 ‘막(膜)으로 거르는’ 방식으로 대체할 실마리가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고동연 교수팀(최지훈·서혁준 박사 공동 제1저자)은 값싼 다공성 고분자(PAN) 분리막에 별도의 선택층 코팅 없이 원유를 흘려보내면, 무거운 성분이 미세 기공에 흡착되며 2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이하의 정밀한 통로가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6월 25일자 학술지 ‘네이처(Nature)’ 온라인판에 보고하였다. 원유를 흘린 지 5분 안에 분리 기능이 생겼고, 10분이 지나자 검은 원유가 옅은 갈색의 투과액으로 바뀌었다. 연구팀은 기존 최고 수준 원유 분리막보다 약 23배 빠른 분리 속도를 얻었으며, 28일 연속 운전에도 성능 저하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 방식은 증류(蒸溜) 공정 대비 에너지 소비를 31.6%, 이산화탄소(CO₂) 배출을 37.6%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적 의미
이번 연구의 핵심은, 산업계에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공정의 하나인 ‘증류’를 상온의 막 분리로 대체할 가능성을 실험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정유·석유화학 공정은 원유를 수백 도로 끓여 성분을 나누기 때문에 막대한 열에너지와 탄소 배출을 수반하는데, 이를 막(membrane)으로 대체하면 에너지·탄소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 특히 코팅 없이 원유 스스로 정밀한 분리 통로를 만든다는 ‘자발적 기공 수축’ 원리는, 분리막 설계의 통념을 바꾸는 발상으로 평가된다. 다만 실험실 규모의 성과를 대면적·대용량 상용 공정으로 확장할 때의 내구성과 오염(파울링) 문제, 다양한 원유·용매에 대한 적용성 검증은 앞으로의 과제다.
해외 · 양자물성·마그노닉스 · ScienceDaily
사라지던 자성 파동을 붙들다 — 마그논 수명 100배, ‘동전 크기 양자컴퓨터’의 실마리
너무 빨리 사라져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미세한 자성(磁性) 파동이, 양자 정보를 실어 나르는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연구진은 자석 내부 스핀(자기 방향)의 집단적 출렁임을 양자화한 ‘마그논(magnon)’의 수명(壽命)을 기존보다 약 100배 늘려 최대 18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까지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마그논은 전자의 이동 없이 자기적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 발열과 전력 소모가 적은 정보처리 소자의 재료로 주목받아 왔으나, 신호가 금세 흩어지는 짧은 수명이 실용화의 걸림돌이었다. 연구진은 이 수명 연장이 향후 1센트 동전만 한 크기의 초소형(超小型)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해당 성과는 과학 전문매체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 등을 통해 6월 말 소개되었다.
기술적 의미
이번 성과의 핵심은, 양자 정보를 담는 물리적 매개체의 선택지를 넓혔다는 점이다. 오늘날 양자컴퓨터는 초전도 회로·이온·중성원자·광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하는데, 고체 자성체 속의 마그논은 소자를 매우 작게 집적할 수 있다는 잠재적 장점을 지닌다. 문제는 양자 상태가 유지되는 ‘결맞음(coherence) 시간’이 짧다는 것이었는데, 수명을 100배 늘린 이번 결과는 마그논 기반 소자의 실용 가능성을 한층 끌어올린다. 이는 본 브리핑이 앞서 다룬 초전도·광집적회로 등 ‘연산의 물리적 토대를 다양화하려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다만 이번 결과는 실험실 수준의 성취로, 실제 큐비트(qubit) 연산과 대규모 집적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