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소재 · Science
세 결정구조가 한 몸으로 — ‘삼상(三相) 나노구조’ 합금, 압축항복강도 2GPa 돌파
금속의 강도를 끌어올리는 데 ‘나노 단위의 미세 조직’이 효과적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으나, 이를 큰 덩어리(벌크)로 안정적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오랜 난제였다. 중국 충칭(重慶)대학과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호주 모나시대 등 공동 연구진은, 여러 금속을 거의 같은 비율로 섞은 ‘굴절성(고융점) 고엔트로피 합금(refractory high-entropy alloy)’ 안에서 세 가지 흔한 결정구조—면심입방(FCC)·체심입방(BCC)·조밀육방(HCP)—가 완벽히 ‘정합(整合·coherent)’하게 얽힌 ‘삼상(三相) 나노구조’가 스스로 형성되는 현상을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보고하였다. ‘고엔트로피 합금’이란 한두 가지 주(主)금속에 소량을 첨가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5종 안팎의 원소를 비슷한 비율로 섞어 만든 신소재를 가리킨다. 연구진은 고체 상태에서 일어나는 ‘상(相) 분리’와 ‘변형(strain)’이 맞물려 이 같은 나노 조직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규명하였으며, 이렇게 얻은 합금은 압축항복강도가 2기가파스칼(GPa)을 넘으면서도 열적(熱的) 안정성을 유지하였다.
기술적 의미
이번 연구의 핵심은, ‘성분이 복잡한 합금에서 변형이 유도하는 상 변태(變態) 경로를 설계’함으로써, 나노 단위의 초강도 구조를 ‘대량·벌크’로 빚어내는 길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결정구조가 ‘완전 정합’으로 결합하면 계면(界面)에서의 결함이 줄어 강도와 안정성이 동시에 높아지는데, 연구진은 이를 큰 원자 크기 차이에도 불구하고 달성하였다. 항공우주·발전 터빈·국방 등 ‘극한 환경’에서 쓰이는 초고강도·고융점 소재의 설계 원리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다만 실험실 합성을 산업적 양산 공정으로 옮기는 데에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의학·면역 · Science
HIV 백신 ‘청사진’ — 키메라 바이러스로 ‘광범위 중화항체’ 유도 단서
변이가 극심해 백신 개발이 가장 어려운 병원체로 꼽히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대해, 다양한 변이를 한꺼번에 무력화하는 ‘광범위 중화항체(broadly neutralizing antibody)’를 유도하는 ‘설계도(blueprint)’가 제시되었다.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6월 18일 자에 실린 보고에 따르면, 연구진은 붉은털원숭이(rhesus macaque)에게 인공적으로 조합한 ‘키메라(chimeric)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실험을 통해, 면역계가 ‘광범위 중화항체’를 만들어 내도록 이끄는 ‘조건의 조합(recipe)’을 찾아냈다. ‘중화항체’란 바이러스가 세포에 달라붙지 못하도록 무력화하는 항체이며, ‘광범위’란 특정 변이뿐 아니라 여러 변종에 두루 통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일부 감염자에게서 자연적으로 이런 항체가 만들어지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백신·면역 전략으로 ‘재현 가능하게’ 유도하는 방법은 분명치 않았다.
기술적 의미
이번 성과의 핵심은, 그동안 ‘우연히’ 관찰되던 광범위 중화항체의 형성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경로’를 동물 실험에서 밝혀, HIV 백신 설계의 ‘방향타’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HIV 백신이 40년 가까이 좌초해 온 가장 큰 이유가 ‘끊임없는 변이’였던 만큼, ‘변하지 않는 공통 표적’을 겨냥하는 항체를 유도할 수 있다면 백신 전략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다만 이는 영장류 실험 단계로, 사람에게서의 안전성·효능·재현성 검증이라는 긴 과정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면역계를 원하는 방향으로 학습시키는’ 원리를 입증했다는 점에서, 본 호 ‘줄기세포 면역 재설정’ 연구와 함께 ‘면역을 다스리는 의학’의 진전을 보여 준다.
의학·면역 · Nature
줄기세포로 중증 자가면역질환 ‘15년 관해’ — 면역계 ‘재부팅’의 장기 효과
스스로의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을, 환자 자신의 조혈모세포(피를 만드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료한 뒤 15년간 재발 없이 관해(寬解·증상이 사라진 상태)가 유지된 장기 추적 결과가 보고되었다. 학술지 ‘네이처(Nature)’가 6월 19일 전한 내용에 따르면, 중증 자가면역질환 환자에게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autologous HSCT)’을 시행한 일부 환자에서 치료 효과가 10년 이상, 길게는 15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치료법은 환자의 줄기세포를 미리 채취해 둔 뒤, 잘못 학습돼 자기 몸을 공격하는 면역세포를 강한 처치로 ‘초기화’하고, 보관해 둔 줄기세포를 다시 주입해 면역계를 ‘재구성(재부팅)’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단기 효과는 보고됐으나,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지속성이 확인된 것은 이례적이다.
기술적 의미
이번 결과의 핵심은, 자가면역질환을 ‘증상 억제’가 아니라 ‘면역계 자체의 재설정’으로 다스릴 수 있으며 그 효과가 ‘오래간다’는 점을 장기 데이터로 입증했다는 데 있다.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는 기존 치료와 달리, ‘근본적 관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면역계를 강하게 초기화하는 과정은 감염·부작용 위험을 동반하므로, 모든 환자에게 적용하기는 어렵고 ‘누가, 언제’ 이 치료의 이득을 볼지 가려내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본 호 ‘HIV 광범위 중화항체’ 연구와 더불어, ‘면역을 끄고 켜고 다시 학습시키는’ 의학의 흐름을 보여 준다.
진화·발생생물학 · Nature
‘생명의 나무’를 가로지른 세포 이식 — 동물은 어떻게 출현했나
단세포 생물이 어떻게 ‘여러 세포가 협력하는 동물’로 진화했는지에 대한 단서를, 종(種)의 경계를 넘어선 세포 이식 실험에서 찾으려는 연구가 제시되었다. 학술지 ‘네이처(Nature)’가 6월 18일 소개한 바에 따르면, 연구진은 진화적으로 멀리 떨어진 생물들 사이에 세포를 옮겨 심는 ‘이종(異種) 세포 이식’을 통해, 서로 다른 생명체의 세포가 어떻게 신호를 주고받고 조직을 이루는지를 관찰하였다. 이는 약 6억 년 전 ‘다세포 동물(후생동물)’이 출현하던 시점에 어떤 분자적·세포적 조건이 갖춰져야 했는지를 실험적으로 되짚으려는 시도다.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란 모든 생물의 진화적 유연관계를 나뭇가지 모양으로 나타낸 계통도를 가리킨다.
기술적 의미
이번 연구의 핵심은, ‘동물의 기원’이라는 진화의 근본 물음을 ‘화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세포의 실험’으로 탐구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종의 세포가 함께 놓였을 때 ‘협력’이 가능한지를 봄으로써,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최소 조건’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는 발생생물학·진화생물학뿐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내는 ‘합성생물학’과 재생의학에도 기초 통찰을 제공한다. 다만 현대 생물의 세포로 과거를 재현하는 데에는 본질적 한계가 있어, 결과 해석에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본 호의 ‘잊힌 능력을 되살리는’ 의학 연구들과 함께, 생명의 근본 원리를 ‘재현’으로 묻는 기초과학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